중세 기독교인들은 부활절까지 이어지는 사순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시카고 대학에서 중세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은 리사 딤(Lisa Deam)의 의 저서 “예수를 찾아가는 3,000마일: 영적 구도자를 위한 생명의 길로서의 순례”(3000 Miles to Jesus: Pilgrimage as a Way of Life for Spiritual Seekers, Broadleaf, 2021)를 통해서 기독인들의 사순절 여정을 살펴보고 남은 사순절 동안 이들과 함께 부지런히 영적 순례의 길을 떠나보자.
리사 딤 박사는 매년 사순절 동안 “영적 발걸음”을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십자가와 텅 빈 무덤으로 걸어갈 준비를 한다. 길은 멀고 어려우며, 기도와 개인적인 계산, 회개의 언덕과 계곡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각 단계는 부활을 맞으려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중세시대에 순례자들은 예수의 지상 마지막 날을 재현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예루살렘으로 여행했다. 예루살렘 순례는 일찍이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새로 발견된 십자가 처형장소로 알려진 곳에 바실리카를 세웠을 때 전통이 되었다. 335년에 완공된 그리스도의 무덤(성묘) 교회로 알려진 이 성당은 곧 전 세계의 신자들을 끌어들였다. 많은 기독교인은 이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한 길고 힘든 여정에 헌신했다.
중세시대에 북유럽과 영국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들은 평균 3,000마일이라는 놀라운 거리를 걸어갔다. 가장 일반적인 경로는 순례자들이 알프스 산을 넘어 베니스로 가고, 그곳에서 지중해를 가로질러 이스라엘로 가는 페리를 타는 것이다. 성지의 항구 도시 야파(Jaffa)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땅에 발 디뎠다. 여정의 각 구간은 모두 특별한 모험이 필요한 곳이었고, 그 모험을 통과해야, 점차 목표에 가까워졌다.
이 여정은 사순절 동안 영적인 순례의 길을 걸어야 하는 우리에게 그 여정을 어떻게 걸을 것인가를 보여준다. 일단 순례자들은 익숙한 일상의 안락함을 뒤로하고, 포기를 실천했다. 그들은 또한 영혼 탐구에 수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15세기 수사 펠릭스 파브리(Felix Fabri)는 여행 중에 심한 향수병을 경험했고, 예루살렘을 가고자 하는 욕망과 정서적 고통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의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는 바다를 건너가는 것이었다. 배를 탈 때 그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바람과 폭풍이 배를 뒤흔들자, 그와 그의 여행하는 동료들은 하나님께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 중세 순례자들은 여행을 출발한 약 12주 후에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이 여행에 두 주일의 사순절이 지나갔다.
사순절 동안의 영적 순례를 시작하면서 기도와 회개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것과 비슷하다. 종종 비틀거리지만, 특히 우리 앞에 있는 산길과 폭풍우가 치는 바다를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더욱 크게 구해야 함을 깨닫는다.
이 여정에서 힘든 길은 돌아가고자 하는 유혹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다. 그러나 산과 바다를 건너지 않고는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파브리 수사처럼 하나님께 자비를 요청하지 않으면 분명 예루살렘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고, 기도를 통해 자비의 은총을 받는 것이, 지름길로 가고 싶다는 유혹을 물리칠 때 주어지는 사순절의 선물 중 하나이다.
펠릭스 파브리만이 우리의 영적 순례에 동행할 수 있는 순례자가 아니다. 평신도 여성 마저리 캠프(Margery Kempe)라는 또 다른 동반자가 있는데, 영국의 신비주의자인 그녀는 영어로 첫 자서전을 썼다고 한다. 캠프는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로마, 예루살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의 순례를 명하셨다고 한다. 그녀는 1413년에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향해 떠났다. 그녀는 “예수가 태어나셨고 수난을 겪으신 곳, 죽고, 부활하신 곳, 그리고, 그분이 생애 동안과 그 이후에 있었던 다른 거룩한 곳들을 보고자 하는 소망으로 가득했다.”
캠프는 순례하는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그녀는 결국 그녀를 버린 동료 여행자와 충돌했다. 그녀는 한겨울에 알프스를 건너 베네치아에서 배가 성지로 향할 때까지 13주를 기다렸다.
코비드 팬데믹으로 인해 주로 지상에 머물렀던 지난해 우리의 모든 여정은 고속 항공 비행보다 순례를 잠시 중단한 것처럼 보였으므로, 순례를 계속할 수 없었던 캠프가 느꼈던 좌절감에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여정은 서두를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이것은 순례자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끝나는 성스러운 여정의 경우에 특히 그렇다. 이는 피터 잭슨(Peter Jackson)의 “반지 원정대”(The Fellowship of the Ring)에 나오는 간달프(Gandalf)처럼 일찍도, 늦게도 도착하지 않고 그분이 원하시는 때에 정확하게 도착한다.
중세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 ‘2주 동안의 사순절’이 걸렸다면, 16세기 여행자 이냐시오 데 로욜라(Iñigo Lopez de Oñaz y Loyola)는 총 1년치 사순절에 달하는 여행을 떠났다. 영적 회심을 경험한 이그나티우스는 예루살렘 순례를 통해 새로 깨어난 자신의 신앙을 성지라는 공간에 담그기 원했다. 1522년 초, 그는 로욜라에서 바르셀로나까지 걷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성지로 항해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는 몬세라트와 만레사 마을을 통과, 우회함으로써 스페인에서 11개월 동안을 머물렀다.
이 지연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일부 학자들은 이그나티우스가 도시의 전염병 보고로 인해 바르셀로나로 바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하나님은 그를 더 성숙한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 이 긴 일시 중단 기간을 사용하셨다.
만레사에 있는 동안 이그라티우스는 매일 기도하고, 읽고, 쓰고,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몇 시간을 보냈다. 그는 나중에 자서전에서 하나님이 그를 “교사가 가르치는 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대하셨다고 썼다. 그의 우회는 영혼을 위한 학교가 되었고, 1548년에 출판된 영향력 있는 기독교 교육책인 그의 “영적 형성”(Christian formation)의 토대가 되었다.
이그나티우스는 출발한 지 1년 반이 지나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이때 그는 더 이상 개종자가 아니었다. 그의 신앙은 성숙해졌고 성지의 은사를 받을 준비가 갖춰졌다. 이그나티우스는 자신을 “순례자”라고 부르면서 “순례자는 예루살렘을 보고 큰 위로를 느꼈다. 다른 사람들이 증언했듯이 이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신비한 기쁨으로, 순례자들 모두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영적 순례를 걷다가 참을성이 없어지면 이그나티우스의 이야기를 기억하라. 진정한 순례자는 천천히 여행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다가도 종종 멈춘다. 이그나티우스가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달려갔다면 하나님께서 성지에서 그에게 주신 초현실적인 기쁨은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시간을 바치고, 충만하고 준비된 마음으로 성지에 도착했다. 그의 목적지는 부활이었다.
역사 속의 신실한 순례자들은 가장 중요한 여정은 우리가 평소 걷는 속도로 순례를 떠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서 텅 빈 무덤으로 가는 순례보다 더 중요한 여정은 분명히 없다. 영적 발걸음을 예루살렘으로 향하기를 원하면, 우리는 이 순례자들을 모범으로 삼을 수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걸음을 늦추고 시간을 내도록 명령한다. 긴 길을 걸어가고, 자주 멈추고, 어려움에 처하면 자비를 구하라. 이러한 여행 방식을 통해 우리는 마음을 준비하고 예수님의 희생에 대한 간절한 필요를 깨닫게 된다.
부활절 아침에 목적지에 도착하면 영광스러운 광경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겟세마네 정원, 굴려진 돌, 빈 무덤. 로욜라의 이그나티우스가 증언했듯이 우리의 기쁨과 위로는 엄청나게 클 것이다. 사순절, 영적 순례의 길을 중단하지 말고, 계속하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그분이 부활하셨다!”(“He is risen!”)는 소식을 전하는 이메일을 받을 준비를 마치게 된다.
[출처] 재미한인기독선교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