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한 사람들은 흔히 ‘미국음식은 먹을 것이 없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미국음식’이란 햄버거나 피자를 지칭하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이 평가는 여러 모로 부당하다. 무수히 많은 이민자들로 구성된 미국사회의 음식은 그 이민자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독특한 음식 문화는 이민자들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라는 데서 주로 기인한다. 세계 각국의 음식이 어우러져 미국의 음식으로 탄생된다. 아시아나 유럽의 전통 음식이 미국인의 입맛에 맞춘 퓨전 음식으로 변형되어 미국의 전통 음식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날의 운세를 점쳐보는 포춘 쿠키(fortune cookie)는 중국 레스토랑에서 후식으로 제공된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포춘쿠키가 중국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포춘쿠키의 근원은 중국이 아닌 19세기 말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 공원에 차 정원을 만든 일본 조경사 마코토 하기와라에 의해 처음 만들어 졌고, 1915년 파나마 태평양 박람회에서 첫 선을 보이며 세상에 알려졌다.
1920년대에 제빵사 데이비드 정이 자신이 운영하던 홍콩 누들 컴퍼니에서 포춘쿠키 공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엔 샌프란시스코의 에드워드 루이가 점괘가 적힌 종이를 자동으로 집어넣고 쿠키 모양을 내는 기계를 발명하며 생산량을 늘려갔다.
일본 식당에서 팔리는 캘리포니아롤 역시 1963년 LA 리틀 도쿄에 개점한 ‘도쿄회관’의 스시바에서 스시를 만드는 ‘마시타 이치로’씨에 의해 고안되었다. 이후 이름이 캘리포니아롤이라 불리며 미국 전역의 일본 식당에서 인기를 얻고, 일본에도 전해졌다.
한국음식으로 알려진 LA 갈비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LA갈비는 소 등뼈에서 갈비를 잘라 내는 방향에 의해 붙여진 명칭이다.
갈비를 뼈 방향대로 길게 자르는 한국식과 달리 미국에선 뼈와 함께 잘라 측면을 뜻하는 영어 ‘lateral’의 약자를 따 LA갈비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LA산 갈비가 아니고 ‘LA식 갈비’ 또는 ‘LA 절단 갈비’란 얘기다.
1980년대 미국 한인들이 이런 갈비를 먹으면서 LA갈비로 불렀고 이를 국내에선 지명 LA로 오인한 것이다.
판다 익스프레스와 P.F. Chang 같이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중국요리 프랜차이즈는 중국인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퓨전 중국 음식점들이 미국인의 입맛에 맞춰 음식을 변형했다며 정통 중국 음식과는 완전히 다름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다양한 식재료를 공급할 수 있는 자연 환경을 가졌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미국음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햄버거는 독일 이민자들이, 그리고 피자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가지고 들어 온 ‘외국음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햄버거와 피자를 ‘미국음식’으로 부를 수 있다면, 미국에 존재하는 멕시코, 그리스, 쿠바, 중국, 일본, 한국, 태국, 베트남 음식까지 그 목록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각 나라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은 엄연히 미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그들이 가지고 온 음식은 그 지역사회의 입맛에 맞게 서서히 ‘미국화’하 되어진다.
생선을 뺀 초밥이 ‘캘리포니아 롤’이라는 이름으로 대학 식당으로 배달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각기 ‘한국음식’과 ‘일식’이라는 이름으로 식당의 메뉴를 장식하겠지만, 미국사회의 식탁을 풍성하게 가꾸어 가는 ‘미국음식’이기도 하다.
한국에서의 대표적인 중국 요리인 짜장면은 한국식으로 현지화된 요리이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미국 요리 역시 양념 치킨이나 감자 핫도그처럼 한국식으로 현지화된 요리가 상당히 많다.
또 이탈리아 음식인 ‘라자니아’, 일본 음식인 ‘데리야끼 치킨’, 멕시칸 음식인 ‘타코’ 및 한국인들에게 탕수육으로 불리는 중국 음식인 ‘제네럴 추즈 치킨’ 등도 미국인들이 일상에서 자주 먹는 음식들이 되었다.
감자튀김이 “프렌치프라이 (French Fries)”라고 불리며’햄버거’와 함께, 너무도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미국 인스턴트 음식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제 누구도 햄버거 옆에 있는 감자튀김을 보고 유럽의 문화를 연상하지 않는다.
진정성과 전통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뉴욕스타일 에그롤과 캘리포니아 에그롤은 다르다. 시대에 맞는 트렌드에 따라 음식의 인기가 상승하고 급격히 사라지기도 한다. 세계가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요즈음, 흔히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을 수용하고 인정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