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10월 1일(화) 100세를 맞이하여 미국 역사상 세 자릿수에 도달한 최초의 전직 총사령관이자 최장수 전직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
카터 전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카터 센터는 1일, 카터를 “리더십과 연민의 등대이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라고 칭하는 명을 발표했다.
“카터 전 대통령의 유산은 전 세계에 희망과 진보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의 한 세기 인생은 봉사의 힘에 대한 증거이며, 카터 센터는 평화, 건강, 인권에 대한 그의 헌신을 영원히 기억하는 곳입니다.”
9월 17일, 카터 센터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폭스 극장에서 여러 음악가와 약 4,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카터를 기리는 콘서트를 개최했다.
조지아의 작은 농촌 마을 출신인 카터는 1946년 미국 해군사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같은 해에 그는 로잘린 스미스와 결혼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지난해 11월 로잘린 스미스가 96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1960년대부터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한 카터는 1962년 조지아주 상원의원에 당선되고 1971년 조지아 주지사가 되었으며 1974년에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선거대책위원장을 역임했다.
1976년 카터는 297명의 선거인단과 4천만 표 이상의 득표로 공화당 현직 대통령이자 전 부통령인 제럴드 포드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 도서관에는 “지미 카터 행정부의 중요한 외교 정책 성과로는 파나마 운하 조약, 캠프 데이비드 협정,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평화 조약, 소련과의 SALT II 조약, 중화인민공화국과의 미국 외교 관계 수립이 있습니다.”라고 적혀있다.“.
“국내적 측면에서는 신설된 에너지부가 수행한 종합적인 에너지 프로그램, 에너지, 교통, 통신, 금융 분야의 규제 완화, 신설된 교육부의 주요 교육 프로그램, 알래스카 국익 토지 보존법을 포함한 주요 환경 보호 법안 등이 행정부의 업적으로 꼽혔다.”
그러나 카터는 심각한 경제 불황과 이란 혁명과 같은 국제적 문제로 인해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한 번의 임기만 수행하게 된다.
퇴임 후 카터는 아내와 함께 해비타트에서 수십 년간 자원봉사를 하는 등 다양한 자선 활동으로 유명해졌다.
1980년대부터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마라나타 침례교회에서 정규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한 카터는 암 투병 중이던 2015년에도 주일학교 수업을 가르치는 열정을 보였다.
카터는 남침례교회의 오랜 회원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여성의 목사직을 허용하지 않는 교단 규정으로 인해 결국 2000년에 교단을 떠났다.
카터는 지난해 2월 다양한 건강 문제로 인해 호스피스 치료를 받았으며, 이후 마라나타 교회 주일학교 교사를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