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이 팔레스타인의 전통 스카프 케피예(keffiyeh scarf)에 아기 예수를 눕힌 성탄 장식물을 철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장식물은 이스라엘 반대 시위에서 자주 사용되는 상징적 아이템을 성탄 구유에 사용한 것으로, 일부 논란을 일으켰다.
케피예를 사용한 이 구유 장식은 지난 12월 7일 바티칸의 바오로 6세 홀에 처음 전시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같은 날 이 장식물 앞에서 기도하며, 크리스마스 장식을 디자인한 예술가들과 기부자들을 만났다.
그러나 수요일 현재, 아기 예수와 케피예, 구유가 철거되었으며, 바티칸 측은 철거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철거 이유가 논란에 의한 것인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이는 대림절 동안 가톨릭 신자들이 전통적으로 아기 예수 상을 구유에 배치하지 않는 관습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보통 예수 상은 성탄 전날인 12월 24일에 배치된다.
이번 장식물인 ‘2024 베들레헴 성탄’은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출신 예술가 조니 안도니아와 파텐 나스타스 미트와시가 디자인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산하 교회문제 고등위원회와 주 바티칸 팔레스타인 대사관 등이 이 성탄 장식 제작을 조직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번 성탄 장식물은 교황과 예술가들, 기부자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한 팔레스타인 관계자는 바티칸이 케피예 철거 이유를 밝히지 않았으며, 12월 24일 이후 다시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장식물에 대해 미국유대인위원회(AJC)는 “중요한 종교적 전통이 정치화되어 실망스럽고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또 비당파 감시 단체인 StopAntisemitism은 이 장식물이 예수가 팔레스타인인이라고 주장하며 이스라엘과 유대 민족의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로 간주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역사 왜곡은 형태를 바꾸지만, 유대 민족에 대한 오랜 증오심은 지속된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성탄 장식물 및 크리스마스 트리 기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상기시킨다”며 평화를 촉구했다. 교황은 “전쟁은 이제 그만, 폭력은 그만!”이라며 “무기 산업은 가장 수익성이 높은 투자 중 하나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기 위한 돈벌이는 왜 존재하는가? 더 이상의 전쟁은 없어야 한다”고 강하게 발언했다.
교황은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납치된 인질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가자 지구에 남아 있는 피해자 가족들과 만난 바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군사작전이 집단학살(genocide)에 해당하는지 조사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군사 대응이 집단학살이라는 주장에 대해 강력히 부인했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최소 1,200명이 사망하고, 250명이 납치되었다. 한편, 하마스가 운영하는 가자 보건부는 이스라엘 군사작전으로 4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이 통계는 민간인과 전투원을 구분하지 않고 있으며, 가자 지구에서 발사된 로켓 오발로 인한 사망도 포함하지 않았다.
교황은 목요일, 바티칸에서 팔레스타인 마흐무드 압바스 대통령과 만나 성지의 평화에 대해 논의했다. 이번 성탄 장식 논란과 함께, 성지에서의 갈등과 평화 문제는 여전히 국제적 관심을 받고 있다.
김미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