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독립기념일인 지난 4일 서명한 대규모 예산 법안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은퇴한 시니어들부터 미국에 합법적으로 유학 오는 외국인 학생들까지, 다양한 계층이 새 법안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불법이민 단속이 강화되면서, 일부 이민자 커뮤니티에서는 법안 통과 직후 메디캘(Medi-Cal)을 자진 해지하고 병원 진료도 중단하겠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서류미비자나 영주권을 신청중인 가족의 경우 의료 서비스를 이용했다가 거주지가 노출돼 체포되거나 향후 영주권 심사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KFF 보건정책 부사장 래리 레빗은 “현행 법안은 의료 서비스 이용만으로 이민 절차에 불이익을 주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새 규정이 실제로 시행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면 현재로선 기존의 법적 권리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며 “특히 임산부와 어린이, 응급환자는 반드시 필요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레빗 부사장은 또 커뮤니티 단체들과 의료기관들을 향해 “이민자에게 정확한 정보와 법적 보호 수단에 적극적으로 안내해야 한다”며 “정보 공유와 연대를 통해 불필요한 공포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메리칸커뮤니티미디어(ACoM) 에서 지난 7월 11일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전문가들은 이번 예산안이 단기적 영향을 넘어 미국의 보건, 환경, 국가 재정에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특히 향후 10년동안 국가 재정 적자가 3조 달러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했다. 이번 법안은 트럼프 1기 당시 시행된 감세 정책을 유지하고 화석 연료 산업과 국경안보 예산을 대폭 확대했다. 반면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 및 식량 지원 프로그램은 대폭 축소했다. 아래는 주요 분야별 변화 내용이다.
메디케이드 예산을 역사상 최대 규모인 9000억 달러 삭감한다. 전문가들은 이 조치가 사실상 오바마케어(ACA)의 일부 폐지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 오바마케어 메디케이드 수혜자는 근로활동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보험 혜택을 유지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는 약 480만 명이 보험 자격을 상실할 것으로 추산된다. 자격 갱신 주기도 1년에서 6개월로 단축되며, 저소득층 합법체류 이민자에 대한 오바마케어와 메디케이드, 메디케어 자격 지원도 대폭 제한된다.
기존의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던 등록 절차 간소화, 요양원 인력 확충 등의 정책은 모두 중단된다. 이를 보안하기 위해 농촌 지역 병원 지원 기금 500억 달러가 책정됐지만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해 실효성은 낫다는 평가다.
건강보험 시장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자동 갱신 제도가 사라지고 소득검증 절차가 까다로워졌다. 세금 공제 초과 환수 한도도 폐지돼 연말 세금신고시 소득이 예상보다 높을 경우 수천 달러를 환급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일부 주 정부는 불법이민자에 대한 자체 의료지원 축소를 검토 중이다.
65세 이상 시니어들에게 제공되는 메디케어 예산도 약 5000억 달러 삭감된다. 주요 삭감 항목은 ▲병원·요양원 등 의료 공급자 지불액 축소 ▲의료서비스 인센티브 감축 ▲약품 및 의료기기 환급 예산 감축 ▲백신, 암 검진 등 예방 진료 프로그램 예산 축소 등이다.
레빗 부사장은 “이러한 삭감은 단기적으로는 연방 지출을 줄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응급 상황과 입원이 증가해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예일대 법학대학원의 나타샤 사린 교수 역시 “예방 진료가 사라지면 만성질환이 악화돼 응급실로 몰리는 환자가 늘고 그에 따른 치료 단가는 수배로 높아진다”며 전체적인 의료비 상승을 예고했다. 레빗 부사장은 “응급실은 법적으로 치료를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무보험자가 증가할수록 공공병원 재정에 직격탄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법안은 미국내 고급 인재 유치 전략에도 차질을 줄 가능성이 크다. 우선 유학생 비자 신청 수수료 인상과 관련 심사 강화가 예고됐으며, 일부 STEM 전공자의 실습프로그램(OPT) 연장자격도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가족 단위로 체류하는 유학생의 경우 건강보험 보조금이나 주거 지원 등 일부 공공
지원 프로그램에서 배제될 수 있으며, 유학생 배우자의 취업도 제한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유학생 커뮤니티 전반에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기후 분야 예산도 대폭 축소됐다. 태양광, 풍력, 전기차, 열펌프에 제공되던 연방 세액 공제는 전면 폐지됐으며, 항공우주국(NASA)과 해양대기청(NOAA)의 기후 관측 예산도 대폭 삭감됐다. 환경운동가 빌 맥키븐은 “이 법안은 기후위기 대응을 역행하는 결정”이라며 “청정에너지가 가장 저렴하고 안전한 에너지원임에도 정부가 오히려 이를 저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