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을 넘어 사명을 지키는 길 위에서” 미국 땅에서 종교비자로 살아가는 한인 성직자들의 이야기…
2025년 8월의 어느 밤, 뉴욕 맨해튼 이민세관단속국(ICE) 청사 앞에서 한 어머니와 딸이 뜨겁게 포옹했다. 딸 고연수(20) 씨는 나흘 전, 이민법원 출석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던 순간 체포됐다. 이유는 “비자 초과 체류 의심.” 하지만 그녀는 종교비자(R-2)를 가진 합법적인 체류자였다. 그녀의 어머니, 김기리 신부는 대한성공회에서 여성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은 성직자다. 김 신부는 딸의 손을 붙잡은 채, “이 아이는 내 기도와 함께 이 땅에서 자라났습니다”라고 울먹였다.
이 사건은 단순한 행정 착오를 넘어, 종교비자 체류자들의 불안정한 현실을 조명하게 했다…
“목회자의 딸이었기에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김기리 신부는 2021년 종교인 비자( R-1)을 받고 미국 성공회 뉴욕교구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고연수 씨는 그에 동반한 가족 자격으로 R-2 비자를 받아 입국했고, 뉴욕주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퍼듀대에 진학했다. 그녀는 누구보다 이 땅에 순응했고, 학교와 지역 공동체에서 봉사활동도 활발히 해왔다. 하지만 ICE 요원은 법원 출석을 마치고 나오는 그녀를 체포했고, 그녀는 영장 없이 구금되었다. 단지 “시스템상 신분이 만료된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였다. 어쩌면 그녀는 “신분증이 있었지만, 목회자의 딸이었기에 더 조심해야 했던”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단지 교회를 섬기러 왔을 뿐인데…”
뉴저지에서 사역 중인 한인 목회자 박 모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비자를 받을 때는 ‘사역만 잘하면 된다’고 믿었지만, 지금은 예배보다 더 많이 기도하게 됩니다. 체류 연장, 서류 심사, 이민국 서신… 하루하루가 심문 같습니다.”
R-1 종교비자는 미국 종교기관이 초청한 외국인 종교인을 위한 비자다. 선교사, 목회자, 신부, 수도자 등이 대상이다. 그러나 심사 절차는 매년 강화되고, 특히 체류 연장이나 가족 비자 갱신은 까다로워졌다.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행정 실수나 서류 누락으로도 “불법체류자”가 될 수 있다.
LA에서 선교하는 김 모 전도사는 “국세청(IRS) 서류에 교회 이름이 빠졌다는 이유로 비자 연장이 지연됐다”며 “그 기간 동안 DMV에 운전면허 갱신도 안 돼 생계도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사역보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내게 체류 자격이 있는가”
문제는 단지 행정 절차의 복잡함이 아니다. 그 뒤에 숨겨진 감정, 공포, 불안,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성직자들의 내면이다. 뉴욕 퀸즈에서 이민자 보호 교회를 운영하는 한 목회자는 이렇게 전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선교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류 민감층’입니다. 이민법이 바뀔 때마다 자녀들의 체류 신분도 흔들립니다. 이 땅에 복음을 전하러 왔지만, 매주 복음을 전한 후에는 이민국 웹사이트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그들은 단지 교회를 세우러 온 것이 아니다. 이민자들의 눈물을 닦기 위해, 소외된 이들의 피난처가 되기 위해 부름받은 존재다.
“눈물로 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고연수 씨는 석방 직후 “제가 받은 도움에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짧게 말했다. 그 한마디는 이 땅의 수많은 종교비자 소지자들, 성직자 가족들이 마음 깊이 공감하는 고백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 김기리 신부는 여전히 이민자 보호 교회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가 돕는 수많은 한인 이민자들 중엔, 서류 미비 청년도 있고, 자녀의 신분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어머니들도 있다.
성경은 말한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편 126:5) 이 땅의 한인 성직자들과 그 가족들은 지금도 그 눈물의 밭에 서 있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는 서류로만 판단할 수 없는 소명과 희생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미국 땅에 심긴 믿음의 씨앗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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