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달라스의 크리스웰 신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한 동료 교수로부터 존 맥아더 목사의 설교 카세트 테이프를 받았다. 그의 강한 변증적 능력과 탁월한 본문 해석력은 당시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프랭클린 그레이엄은 그를 가리켜 “성경 한 구절에서 가장 많은 의미를 이끌어낼 수 있는 설교자”라고 평했고, 존 파이퍼는 “그의 강단 사역을 경외심으로 지켜봤다”고 말했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나는 그가 주최하던 ‘셰퍼즈 콘퍼런스’에 여러 차례 참석했고, 매일 아침 면도하며 그의 설교를 들을 정도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내는 그럴 때면 농담처럼 “좋은 아침, 리처드! 좋은 아침, 존!”이라고 말하곤 했다.
맥아더는 무오하며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한 절 한 절 설교하는 ‘강해 설교’에 전념했으며, 그 순전한 복음을 전하겠다는 열정이 그를 미국 복음주의 진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설교자 중 한 사람으로 세웠다. 2011년 6월 5일, 그는 42년에 걸쳐 신약 전체를 설교하는 생애 목표를 완수했고, 그가 성경을 설교할 때 사람들은 언제나 그가 어디에 서 있으며, 청중이 어디에 서야 한다고 믿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미국 남침례신학교 총장 알 몰러는 그를 “복음주의 진영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영향력 있는 강단을 이끈 설교자”로 평가했다.
문화적 자유주의가 강한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복음주의 지도자로 부상한 것은 그의 메시지의 힘과 일관된 헌신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반증한다. 그의 유산은 마스터스 대학교(전 로스앤젤레스 침례대)와 마스터스 신학교를 통해, 그리고 수백 권의 저서와 방송 설교를 통해 지속되고 있다. 약 3세대에 걸쳐 수천 명의 목회자가 그의 사역을 통해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맥아더는 빌리 그레이엄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논쟁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강단에서의 강한 존재감과 타협 없는 신학적 확신은 ‘불같은 설교자이자 문화 전사’로 불리게 했다. 사역 초기엔 침례교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개혁주의 교리를 더욱 단호히 수용했고, 칼빈주의 5대 교리(TULIP)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중 약 “3와 ¼” 정도에만 동의하지만, 그의 일관성에는 경의를 표한다.
그는 오순절 교단이 성령의 은사 지속성을 주장하는 ‘비중단론(continuationism)’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강한 비판을 가했다. 이는 2013년 ‘Strange Fire’ 컨퍼런스와 동명의 저서로 이어졌고, 많은 은사주의자들과의 논쟁을 불러왔다. 그는 오순절 운동을 “성령을 도둑질하고 금송아지를 만든 것”에 비유했지만, 나는 그 표현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느꼈다. 대부분의 신학적 오류는 이단이 아닌 잘못된 해석일 뿐이다.
또한 그는 종교개혁의 핵심 교리인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에 철저하게 헌신했으며, 행위를 구원의 증거로 보는 신앙 전통들까지도 복음을 오염시킬 수 있다고 경계했다. 그러나 나는 로마서 10장 9절이 말하는 복음을 중심으로 보다 넓게 바라본다. 내 경험에 따르면, 열심 있는 가톨릭 신자나 오순절 신자들 중에도 구원의 진리를 붙든 이들이 있으며, 어떤 침례교도들은 오히려 그렇지 않다.
맥아더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화 전사’로서의 색채도 짙어졌다.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했고, 복음주의자들이 공적 정책에 적극 참여하는 데는 처음엔 회의적이었지만 나중에는 적극적인 참여로 전환했다. 당시 알 고어 부통령이 기독교 복음 방송을 규제하려 하자, 나는 그에게 “지금 방송에서 당신을 내쫓으려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공공정책에 나서야 한다”고 직접 말한 바 있다. 이후 그는 점점 더 목소리를 높이는 문화 지도자가 되었다.
그와 나 사이에는 분명한 신학적 차이와 시각 차이가 있었지만, 나는 그의 헌신과 재능, 주님에 대한 충성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내가 그와 같은 지역에 살았다면 아마 침례교회를 선택했겠지만, 그의 이웃 목사로 함께 복음을 수호했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가 남긴 사역과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의 설교를 다시 들을 때마다, 나는 바울이 말한 이 구절을 떠올릴 것이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디모데후서 4:7–8)
감사합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 당신은 끝까지 충성하셨습니다.
마이클 그리보스키 [번역기사: 크리스천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