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맥아더 목사를 기리며…

오늘날 많은 이들이 존 맥아더 목사의 길고 충실했던 목회 사역을 회상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저 역시 지난 수년간 존 목사님과 개인적인 인연을 가질 수 있었던 특권을 누렸습니다.

1970년대, 저의 아버지가 무디 바이블 인스티튜트 총장으로 재직할 당시, 존 목사님을 무디 라디오의 방송 설교자로 초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무디 출판사는 이후 그의 주석 시리즈와 여러 저서들을 출판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교를 막 졸업하고 저는 캘리포니아 선밸리에 있는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에서 존 목사님의 목회 인턴으로 사역하게 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마스터스 칼리지와 신학교가 세워지기 전이었지만, 교회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존 맥아더는 성경을 구절마다 충실히 설교하고 가르치는 데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사랑했고, 그 진리를 굳건히 붙들었습니다. 그의 강해설교 사역은 ‘당신에게 은혜를(Grace to You)’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전파되었고, 그가 집필한 책은 150권이 넘습니다. 평생 변함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한 그의 충실함을 저는 존경합니다.

그는 한때 마틴 로이드 존스의 글을 접하고 개혁주의 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평생 전천년주의자로 남았지만, 자신을 “새는 세대주의자”라 칭하기도 했습니다.

존은 복음을 사랑했고, 복음의 변혁적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의 목회 아래 많은 새 신자들이 제자훈련을 받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며 감탄하곤 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복음(thin gospel)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선포하는 온전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로 인해 생겨난 논란이 바로 ‘주 되심 구원론(Lordship S)’이었습니다.

그는 교회를 깊이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교회에서 인턴으로 섬길 당시 저는 교회의 다양한 사역을 직접 경험했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읽고 공부해야 했습니다. 특히 에베소서 설교 시리즈와 초기의 ‘목자학’ 강의가 인상 깊었습니다. 그는 목사-교사로서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으며, 무려 54년 넘게 한 교회를 섬겼고, 후진 양성을 위한 열정도 남달랐습니다. 그 결과 ‘목자 회의(Shepherd’s Conference)’라는 연례 컨퍼런스가 탄생했는데, 이는 무디 목회자 컨퍼런스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기억됩니다.

존은 한때 무디 이사회에서 활동하며, 무디 총장직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고사했습니다.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에 남아 목회 사역에 헌신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념의 사람이었고, 때때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언제나 진리를 수호하는 용기를 가졌습니다. 그는 왜곡된 복음, 번영복음, 사회적 복음, 진보적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며 시대의 흐름을 거슬렀습니다.

그의 가장 상징적인 순간 중 하나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캘리포니아 개빈 뉴섬 주지사의 예배 금지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교회의 대면 예배를 지속한 일이었습니다. 당시엔 논란이 되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옳고도 담대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는 콜로라도 크리스천 대학교에서 저희 초청으로 복음을 전한 적도 있었고, ‘서부 보수주의 정상회담’에서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지난 50년간 수많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존 맥아더는 그중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칼 헨리, 존 스토트, J.I. 패커, R.C. 스프로울 등과 함께 그는 복음주의 세계의 한 축을 이루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구주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고백했던 사람이었으며, 마침내 주님 앞에 서게 될 그날을 소망했던 신실한 종이었습니다.

도널드 스위팅 [번역기사: 크리스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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