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침례교회의 의장 J.D. 그리어는 교단 목회자들이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을 ‘제세벨’이라고 부르는 것을 자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는 대신 선출된 지도자로서 그녀를 위해 기도할 것을 그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리어 목사의 이 같은 권고는 SBC 집행위원회 위원인 스티브 스웨포드(Steve Swofford)를 포함한 SBC의 목회자들이 부통령을 “이세벨”이라고 언급하면서 나온 것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멀티캠퍼스 서밋교회 목회자인 그리어 목사는 20일 트위터에 “일부 목회자들이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을 제세벨에 부르거나 비교하는 것은 특정 인종 고정관념의 역사를 모를 것 같다. 그건 현명한 발언은 아니다. 우리가 정책을 비판할 때가 있지만, 그것은 신이 우리에게 명예와 기도를 하라고 말한 새로운 공직자에 대한 인신공격을 포함시켜서는 안된다. 우리는 의를 위하여 명료하고 담대하게 말하되, 성경에서 지도자들을 공경하는 것 같이 우리는 죄악을 바로 잡겠다고 다른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라고 섰다.
미국 텍사스주 록월 제1침례교회 목회자인 스워포드 목사는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을 인지기능장애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이세벨이 인수해야 한다. 이세벨 해리스, 그게 그녀의 이름이 아닌가?”라고 했다.
텍사스 린데일제일침례교회 목사인 톰 벅(Tom Buck)은 부통령의 취임식 이틀 후 트위터에서 해리스를 “이세벨”이라고 불렀다.
벅은 트위터에 “이세벨이 권력을 가진 여성이었기 때문에 진정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딸들이 이세벨을 영감을 주는 모범으로 생각했다고는 상상할 수 없다”고 트윗했다.
그는 또한 “나는 인종이나 생물학적 성별과 관계없이 그들의 입술과 삶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무릎을 꿇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세벨은 성경에서 살인자, 매춘부, 하나님의 적이라고 불리었는데, 또한 미국 역사에서 이 이름은 인종차별적 의미를 담고 있다.
짐 크로 인종차별 기념관(Jim Crow Museum of Racist Memorabilia)이 있는 미시간의 페리스주립대학(Ferris State University)에 따르면 노예제도가 있었을 때 시작된 흑인 여성을 창녀 이세벨로 묘사한 것은 짐 크로 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박물관의 웹사이트는 “흑인 여성에 대한 Mammy 캐리커처는 노예 시대부터 1950년대까지 흑인 여성에 대한 지배적인 대중문화 이미지였지만, 흑인 여성을 이세벨로 묘사하는 것도 미국 백인 문화에서는 흔한 것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알몸 또는 속이 비치는 얇은 옷을 입은 흑인 여성이 재떨이, 엽서, 악보, 낚시 미끼, 술잔 등과 같은 일상적인 품목을 들고 있는 모습은 백인 남성들의 오만함과 성적 폭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세벨에 대한 최초의 인종차별적 정의 중 일부 가운데서 이 이름은 노예 시대의 혼혈 여성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이 여성 중 다수는 종종 매춘을 위해 팔려 갔다.
1964년 10월 20일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태어난 해리스는 혼혈 여성이다. 어머니 샤말라 고팔란은 프로게스테론 수용체 유전자에 관한 연구와 유방암 연구 활동을 한 생물학자로, 1958년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의 영양 및 내분비학 대학원생으로 인도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고팔란은 1964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메이카 태생의 그녀의 아버지 도널드 J. 해리스는 스탠퍼드대 경제학 명예교수로, 1966년 UC 버클리 대학 대학원 공부를 위해 1961년 미국에 도착하여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7살 때 이혼했다. 해리스는 여동생 마야와 함께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살았다가 맥길 대학 부속 유대인 종합병원의 연구 및 교수가 된 어머니를 따라 12살 때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로 이사를 갔고, 1986년 워싱턴 D.C.에 있는 하워드대학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1990년 해리스는 캘리포니아 알라메다 카운티에서 지방 검사로 고용되어 “유능한 검사”로 주목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와 전 샌프란시스코 시장 윌리 브라운(Willie Brown)과의 관계는 최근 몇 달 동안 많은 헤드라인의 주제가 되었다.
해리스는 30세 연상인 브라운과 1994년과 1995년에 브라운이 시장으로 선출된 후 헤어지기 전까지 데이트했다. 당시 브라운은 유부남이었으나 1981년부터 아내 블랑쉬 브라운과 별거 상태였다고 한다.
벅 목사는 해리스를 “이세벨”이라고 부른 것은 그녀의 인종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1월 23일 트위터에서 내 트윗을 찢어 놓은 사람들에게는 100% 참는다고 트윗하며 “내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그녀의 불신앙이다. 그녀는 가장 급진적인 낙태를 찬성하는 부통령일 뿐만 아니라 가장 급진적인 성 소수자(LGBT)들의 옹호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최초의 레즈비언 ‘결혼’을 하기도 했다. 그녀를 위해 기도하되 칭찬하지는 말라”고 말했다.